한 살 아래 남편에게 간 70% 떼준 76세 아내만
"약속 자식도 말렸지만 애원 … 국내 최고령 간 이식수술 성공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부모님도 한날 한시에 돌아가셨어요. 내 남편이 수술도 못 받고 먼저 가 버리면 난 평생
후회하며 살 거예요.”
지난달 12일 A씨(76·여)가 경기도 고양시의 국립암센터를 찾았다.
그는 암센터 간이식팀의 김성훈(44) 전문의에게 “내 간을 떼어내 남편에게 이식해 달라”
고 요청했다. 한 살 연하인 남편 B씨는 2006년 간암 판정을 받은 이후 여러 치료법을
동원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남은 희망은 간이식뿐이었다. 안 되면 6개월을 넘기기 힘든 상황이었다.
키 1m54㎝에 체중 51㎏인 A씨는 비교적 젊고 건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76세란 나이가 문제였다. 김 전문의는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간이식 관련 규정에 기증자의 나이는 16세 이상으로 상한선은 없다.
하지만 다수의 이식학 교과서엔 간 제공 가능 연령이 55세까지로 적혀 있다.
김 전문의는 “간의 70%를 떼어 주는 큰 수술이어서 견디기 힘들 것”
이라고 거듭 만류했다. 간은 복원력이 커서 수술 7∼10일이 지나면 기증자의 간 기능은
정상화되고 크기도 수술 1∼3개월 내에 90% 이상 회복 가능하다.
하지만 간을 떼어내는 도중 출혈 발생 등 심각한 수술 합병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A씨는 “결혼 14일 만에 남편이 심하게 아팠고 그 뒤에도 여러 병을 앓은
남편 간병에 일생을 바쳐 왔다. 그렇게 함께 살아오고 사랑한 남편과 한날한시에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애원했다.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암센터 측은 수술
가능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할머니의 간·심장·폐기능을 검사했다. 다행히
모두 상태가 좋았다.
뒤늦게 수술 소식을 들은 자녀들이 병원에 달려와 “자칫하다간 엄마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며 “대신 내 간을 이식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 자녀는 “우리 엄마의 인생엔 왜 모진 일만 생기느냐”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검사 결과 지방간이나 간염이 나타나 이식이 불가능했다.
간 일부를 떼어내는 데 2시간, 간을 이식하는 데 7시간 등 모두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날 수술은 국내 최고령자들 사이의 간이식 수술로 기록됐다.
300회 이상 간이식을 집도한 김 전문의는
“워낙 나이가 많은 환자들이어서 상당히 부담이 됐다”며
“이렇게 고령자들 사이의 이식 수술은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남편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료진은 간이식을 받은 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완치율)을 70∼80%로 추정한다.
A씨도 수술 뒤 간 기능이 정상 회복돼 7일 퇴원했다.
A씨의 요청으로 암센터 측은 그동안 수술 성공 사실을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암센터 관계자는 8일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한 일이 밖으로 크게 알려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박태균 기자 [tkpark@joongang.co.kr]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보료 줄이기 불법·편법 극성 (0) | 2012.06.06 |
---|---|
장쯔이와 하룻밤에 18억원?… (0) | 2012.05.30 |
[부의 쏠림 갈수록 심화 (0) | 2012.05.08 |
“한국, 외환위기 때 못지않게 심각” (0) | 2012.04.20 |
1조3000억 삼킨 '청계천의 재앙' (0) | 2012.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