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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봉곡선생 중건운시(鳳谷先生 重建韻詩)

by 석암 조헌섭. 202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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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곡선생 중건운시(鳳谷先生 重建韻詩)


이천(以天)봉곡 (鳳谷) 선생은 1560년 명종 15년 경신년에 태어나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 문하에서 글을 배워 덕업(德業)문장이 재보(宰輔) 재상(宰相)
 으로 서의 인망이 있었고 ,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설학(雪壑) 이대기(李大期) .
 뇌곡(磊谷)안극가(安克家).  당암(戇庵) 강익문 (姜翼文).
 매죽와(梅竹窩)노극성(盧克成).
 도촌(陶村)조응인(曺應仁). 등 과 친하였다.
 
이천 봉곡(以 天鳳谷)선생은 효심이 지극하여 백형 수천(受天 )정와(靜窩)공을 따라
 6년 동안 부모의 산소 아래에 여막을 짓고  여묘 생활을 하여  세상에서
 쌍효자산(雙孝子産)이라 일컬어지며  그 사실이 읍지(邑地)에도실려 있습니다.
 
저서로는 계정집(溪亭集)이 있는데 설학(雪壑)이공(李公)이 쓰기를 계정의 벽에다
 쓰기를 송백(松栢)과 지란(芝蘭)에  비교되는데 어찌 일찍이 부귀에 대하여
 묻겠는가?
하늘가에는 구름이 떴다 없어졌다 하도다.   라고 하였으며  또 "계암에서 문을
 닫고 있던 때에 흩어지고 남은 해묵은 서책 새롭도다, 하였는데 십분 진정한 면목을 이해하였다.고 말을 할 수 있다.
현와이공(鉉窩李公)은 우리 존장의 그윽한 마음은 불 꺼진 재와 같은데 어떻게
 움직이는 주체가 되어 물가의 정자에다 드러내겠는가 ?
 
한가로운 구름은 끝없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건만 .들에 사는 학은 세상일 잊고  마음대로 오가도다,,라고 하였다.그 후 1741년 영조 17년 신유년에 사림(士林)들이 덕곡사(德谷祠)를 건립하여
 제향(祭享)하였다.
 
그리고 또 성균관 제주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묘갈명 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재능은 아름답고 학문은 깊어 하늘이 반드시 기용할 터인데,발탁되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니 바로 현명하다고  할만하며  비석에 새기기에 적합하도다. 라고
 하셨다.
 
여기 조헌섭(曺憲燮)이 올리는 봉곡선생 중건 운시 는 1799년 정조 23년 기미년에
 봉곡선생의 후학(後學) 선비들과 후손 (後孫)  조기영(曺基永), 조철승(曺哲承)등
 41명의 시(詩)가 기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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