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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香氣]” 나는 10~30년 전 의복[衣服]을 요즘도 입는다. 그냥 입는 정도가 아니라 입을 게 마땅찮을 때마다 절로 그 옷에 손이 간다. 헌 옷을 버려야만 새 옷을 살 수 있다지만 싫증 안나는 좋은 옷은 두고두고 입으니 제 처(妻)는 나 몰래 많이 버리기도 한다. 그때보다 허리가 굵어지고 몸도 살쪘으니 몸에 잘 안 맞는 옷은 수선해서 입는다. 실크나 울 같은 고급[高級] 옷감도 아니다. 그랬다면 진작 탈색되거나 떨어져 폐기처분[廢棄處分] 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끔 이 옷을 입는 이유는 인간사가 다 그렇듯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넌 무슨 인연[因緣]으로 지치지도 않고 내 몸을 감싸고 있는 거니? 옷도 한 10~30년 곁에 두면 예사 아닌 인연이 생긴다. 고운 피부 결의 여자들이 쉬 주름이 생기듯, 섬유도 너무 결이 고우면 금방 흠이 나버린다. 까다로운 성질[性質]이 불편해 자주 입을 수도 없게 된다. 옷장 속에 걸어 둔다고 옷을 대접[待接]하는 게 아니다. 엔진이 있는 기계[機械]처럼 집이나 옷도 사람 체온이 자주 닿아야만 생명력[生命力]을 유지할 수 있다. 값싼 제품[製品]이었다면 옷걸이에 끼워 옷장 중앙에 걸어두는 수고를 계속[繼續]했을 리가 없다. 이 의복을 10~30년 입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내 곁을 스쳐갔다. 이 의복처럼 한결같은 관계[關係], 그간 변화와 혁신[革新]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세상 속에 살아왔다. 다들 새것, 큰 것, 번쩍이는 것만을 좇아서 달려왔다. 그런데 이제 나는 오래 묵혀 낡고 헌것들 속에 진짜가 있다고 주장[主張]하고 싶은 사람이 됐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알 수 있다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참 좋아한다. 최근의 나는 적어도 삶의 우선순위[優先順位]를 정할 줄은 알게 됐다. 날뛰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도 어지간히는 터득[攄得]했다고 할 수 있다. 저 낡은 의복이 내 몸을 감싼 채 그 기승전결[起承轉結]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물끄러미 지켜봐 왔다. 낡은 의복을 못 버리는 이유[理由]가 이거였나? 동지애[同志愛]? 미운 정? 과거[過去] 집착[執着]? 문명비평[文明批評] ? 진회색과 파랑이 섞인, 정장도 캐주얼도 아닌, 유행[流行]에 상관없이 편하게 입을 수 있다. 이 덤덤함이야말로 이 옷이 내 곁에서 10~30년을 버텨온 힘이었을 거다. 공자[孔子]의 중용[中庸]이나 노자의 도(道)도 이런 언저리에 있는 게 아닐까. 세월이 덧입혀지면 물건도 피붙이 같은 것이 되고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동지가 된다. 2022년 6월 일 석암 조 헌 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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