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2016년 12월 09일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당쟁[黨爭]싸움으로 훈구파, 사림파 소론, 노론, 남인, 북인 등 서로 적으로 삼아 자기편이 아니면 탄핵을 일 삼았으며, 동족 간에 총칼을 겨누며 남북[南北]으로 갈라진 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현재도 보수는 진보[進步]를 빨갱이로 진보는 보수를 수구 꼰대로 매도하며 영남과 호남, 지식인과 무식인, 청년과 장년으로 네 편, 내 편,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몽매한 인성을 바로잡을 통합된 통일 대통령은 언제 나타 날는지…
정치적인 글은 올리기가 조심스럽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어 수정해서 올려 본다.
2016년 12월 9일 오늘 박근혜 대통령은 특가법상 뇌물죄, 직권남용과 강요[ 사유로 적시됐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彈劾 訴追案]이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는 재적 299명에 찬성 234표·반대 56표·기권 2표·무효 7표로 탄핵소추안을 가결 시켰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민련 즉 3야당의 주도 하에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대통령을 대상으로 탄핵소추안[彈劾 訴追案]을 통과시킨 사건[事件]이유는
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발언과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 라고 발언 하였고 이로 인해 대통령이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2004년 3월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무현대통령에게 공직선거및선거부정 방지법을 위반했다고 판정하고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하였다. 탄핵의 발단이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수사대상에 오르지 않았으나, 박 대통령은 이미 피의자 신분으로 지목된 상황이다. 촛불집회가 진행됐으나, 박 대통령의 경우 국민들의 촛불집회 결과로 탄핵이 진행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 14%", "탄핵 찬성 81%",또한 91%는 박 대통령을 부정평가하고 있어, 국민들은 탄핵 여부와 상관없이 더이상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이 재차 확인됐다.세조가 집권할 때 결정적인 공을 세우고 예종-성종 대까지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한명회[韓明澮]는 성종 대에만 대간들로부터 1백 7번이나 탄핵당했다. 동시대의 임사홍[任士洪]은 1백 40번, 유자광[柳子光]은 56번에 걸쳐 탄핵을 조광조, 정인홍, 송시열, 윤선도, 이순신 등 이 사약, 또는 탄핵을 받았다. 받은지 250여 년이 지나 복원되었다니 역사의 평가는 후세에 맏겨야 하겠다. 신진 사림파[士林派]와 훈구파[勳舊派]의 세력다툼이라는 배경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탄핵이 거듭되면 위축되기 마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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