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을 알고, 중국 사람들로부터 들어 남조선이 잘사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가."
조현준
북한 함경북도 나선시에 사는 40대 남성의 말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촬영차
북한을 방문한 계명대 조현준(34·언론영상학)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발전하게 되면 가까운 미래에 남조선 생활수준의 중간급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가 17일 이런 내용의 북한 주민 인터뷰를 공개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삐라’를 만들어 17~24일 경기도 고양·파주시 일원에서
열리는 ‘제7회 DMZ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하면서다.
다큐멘터리는 2013년 11월 조 교수가 직접 찍은 북한 주민들의 모습 위주로
구성했다. 다큐멘터리에서 교사 출신이라는 40대 남성 가이드는 남한
탈북자단체 등의 삐라 살포를 비판했다. "(풍선에) 좋은 것, 쓸 수 있는 것을
넣어 날린다지만 그 사람들이 왜 보내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좋은 것, 쓸 수 있는 것’이란 삐라 풍선에 함께 든 의약품 등을 말한다.
조 교수가 "인도적인 차원에서"라고 하자 이 남성은 "그렇다면 차라리 적십자를 통해 공식적으로 하지 왜 상대방이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불법적인 방법을
택하느냐"고 반문했다.
핵에 대해서는 ‘자위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핵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를 치지 못한다"며 "이라크가 핵을 가지고 있었으면 미국이 못
덤벼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핵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안 일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조 교수는 다큐멘터리에 없는 내용도 소개했다. 중국·러시아와 접경지역인
나선시의 장마당에 있던 40대 후반 여성은 "돈을 많이 버느냐"는 질문에
"하루에 50위안(약 8700원)쯤 벌 때도 있고 전혀 못 버는 날도 있다"고 답했다. 조 교수는 이 여성에 대해 "환전상처럼 보였다"고 했다.
관광지에서 근무하는 30대 여성들은 "남조선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제주도를 첫째로 꼽았다. 이들은 "서울보다 제주도 경치가
좋잖아요.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경성군의 한 마사지업소에서 일하는 20대 후반 여성은 조 교수에게 "남한에서는 어떻게 연애를 하느냐.
우리는 주로 공원에 가는데…"라고 질문했다.
조 교수는 "주민들 모습에서 활기가 느껴졌고 식량이 부족하다곤 하지만
큰 고통을 겪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엔 북한의 인권 실상을 파악하려 했는데 취재 과정에 삐라 살포가
남북 간에 긴장을 초래하는 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돼 거기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캐나다 국적을 가진 조 교수는 중국 여행사를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
호주·영국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 5명과 함께 일주일간 함경북도 나선·청진시 등지를 여행하며 촬영했다. 취재를 마치고 중국으로 나갈 때 북한 검문소에서
영상이 저장된 자신의 컴퓨터를 조사했지만 비밀 폴더에 저장해 발각되지
않았다고 한다.
조 교수는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2009년부터 1년여 동안 미국 방송사 ABC에서 교양프로그램 PD로 일했다.
중앙대·동국대 강사를 거쳐 이달 초 계명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삐라’는 18일 경기도 고양시의 메가박스 백석에
이어 22일 파주시 메가박스에서 상영된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사진 설명 조현준 교수가 찍어온 북한의 모습. 나선시의 한 중학생은 인터뷰에서 "김정일 원수님…"이라고 실수했다가 나중에 "김정은"으로 고쳤다(왼쪽).
가운데는 나선시의 시장, 오른쪽은 나선시 은행의 외화 교환창구다.
환율이 1달러당 7704원으로 돼 있다. [다큐 ?삐라?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