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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회문시(回文詩)

by 석암 조헌섭. 2019. 8. 22.
문시(回文詩)

절기상 늦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를 지나 매미 소리와 반딧불이 서서히 멀어져가고,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스럽게 귀뚤귀뚤 귀 뚤대는 조석으로 쌀쌀한 가을의
문턱에들어서니 독서(讀書)하기 딱 좋은 계절(季節)이라!시(詩)를 첫머리부터
바로 읽어나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어도 의미가 통(通)하고 시법(詩法)에도 
어긋나지 않게 지은 한시(漢詩). 문시(回文詩)를 올려볼까 한다. 

동진시대 때 진주자사(秦州刺史)에 두도(竇滔)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재주 많은 소혜(蘇蕙)라는 아내와 조양대라는 총희가 함께 살고 있었다.
두 여인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두도는 늘 고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도(竇滔)가 양양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아내인 소혜는 남편이 총희를 데리고 가려는 것을 알고는 함께 가는 것을 사양했다. 
 
이후 총희와 함께 양양으로 떠난 남편으로부터 연락(連絡)이 뜸했다.
 남편이 자신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소혜는 몹시 상심하여 자신의 마음을 담은
회문시(回文詩)를 지었다.

그리고는 그 시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오색비단에 짜 넣어 직금회문(織錦回)을

 남편에게 보냈다. 이에 크게 감동한 두도는 총희를 돌려보내고 예의를 갖춰
 아내 소혜를 맞아였다. 이때부터 직금희문은 ‘구성이 절묘한 문학작품’을

비유(比喩)하는 말로 쓰였으며 또한 회문시의 발단(發端)이 되었다. 

회문시란?
첫 글자부터 순서대로 읽어도 뜻이 통(通)하고 끝에서부터 거꾸로 읽어도 뜻이

통하는 시(詩)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주 만병 만 주소’
‘다시 올 이월이 올시다’
‘여보게 저기 저게 보여’
‘사장집 아들 딸 들아 집장사’
‘다큰 도라지라도 큰다’ 등이 역순으로 읽어도 뜻이 같은 말이다.  

회문시의 시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는
 중국 진(秦)나라 소백옥(蘇伯玉)의 처가 지었다는 반중시(盤中詩)와,

 두도(竇滔)의 처 소혜(蘇蕙)가 지었다는 직금회문시(織錦回文詩)를 들었다.
회문시는 진(晋)나라 이후에 유행을 이루었다. 부함(傅咸)의 회문반복시(回文反覆詩),
 조식(曺植)의 경명팔자(鏡銘八字), 양(梁) 나라 간문제(簡文帝)의 
회문사선명(回文紗扇銘), 진(陳)나라 유왕(留王)의 회문(回文)과 왕융(王融)의
 춘유(春遊) 등이 대표적이다.

그 뒤로는 소동파(蘇東坡)의 제직금화(題織錦畫)· 금산사(金山寺) 등이 유명하다.

 송대까지의 회문시는 상세창(桑世昌)이 엮은 회문유취(回文類聚)에 망라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회문시가 유행하였다.

그 에서도 이지심(李知深)이 잘 지었고, 죽림고회(竹林高會)에 참여하였던

 문사들도 즐겨 썼다. 특히, 이규보(李奎報)는 21수나 되는 많은 회문시를 지었다.
그중에서도 이수(李需)의 30운 회문시를 보고 지은

 차운이시랑수이회문화장구설시(次韻李侍郞需以回文和長句雪詩) 30운이 유명하다. 
이 밖에도 형군소(邢君紹)·달전(達全)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김시습의 춘하추동사절시(春夏秋冬四節詩) 4수가 유명하다

한시에서는:처음에는 바른순서로 읽기-단장제앵춘 

반대로 끝에서역순으로 읽기--춘앵제장단 다음은 회문으로 된
한시(漢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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