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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천재[天災]와 인재[人災]

by 석암 조헌섭. 2020. 8. 25.
재[天災]와 인재[人災]   

재[天災]는 벗어날 수 있어도 인재[人災] 앞에는 살아날 수 없다. 
 양심을 회복해야 연속[連續]되는 대형참사[] 막을 수 있다.
실수는 누구나 다할 수 있지만 두 번 실수는 하지 않아야 한다.

짐승도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맹자 공손축상편[孟子 公孫丑上篇] 운[云]
천작 얼 유가 위 자작 얼 불가 활[天作孼猶可違 自作孼不加活]이라
하늘이 내린 천재[天災]는 벗어날 수 있어도 내가 지은 인재[人災]는 벗어날 수 없다.
천작[天作] 천둥, 지진, 화재, 태풍, 폭설 등은 꼼짝없이 당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인재는 사람이 잘못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대형참사[大型慘事] 수해도 천재인지 인재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한국수자원공사 측은 내 고향 합천은 8월 7~8일 집중호우 영향으로 댐 유역에 304㎜의

폭우가 내려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 하고, 수재민들은 8월 8일 오후 7시 합천댐에서
 초당 2700t의 물을 쏟아내 저지대 침수가 발생하여 인재라 한다. 


▲  출처-합천댐 물 방류. 경남도민일보

섬진강 범람의 원인도 섬진강댐의 방류량 조절 실패 때문에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일과 8일 집중호우가 예상됐음에도 사전에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고
최대 초당 1868톤을 방류했기 때문이란다.
주민들은 "지난 1998년 지리산 대홍수 때도 이번처럼 섬진강 수위가 높이 올라가지않았다"며 수자원공사의 치수[] 실패로 큰 피해가 발생한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손해배상[損害賠償]을 청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재든 천재든 빠른 수해복구[舊]가 먼저일 듯하다.  
지난 2월
 코로나 19가 대구 신천지에서 발생하여 그렇게 의료계와 대구 시민
온 국민이
합심하여 세계 모범 국가로 가는가 쉽더니 그만 방심은 금물
[]이라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회장이 담임 목사로 있는 서울 성북구 사랑 제일교회발 코로나가
 일파만파[一派萬波]로 퍼져나가고 있어 안타깝다.


하물며 미물의 짐승도 같은 잘못을 두번을 하지 않는데, 신천지에서 한 잘못을 일부
교회에서 되풀이 하고 있으니 만물의 영장[靈長]인 인간이 짐승만도 못한 동물인가보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
 네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있으니 목회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것 또한 인재[人災]인 듯싶다. 

책을 읽고도 성현[聖賢]을 만나지 못하면 책장을 넘기는 품팔이꾼이요.
위정자가 백성을 사랑할 줄 모르면 관복[官服] 입은 도적[盜賊]이요.
학문을 가르치면서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입에 발린 공염불[空念佛]이요.
사업을 하는 자가 사람들에게 은덕[恩德]을 심을 것을 생각지 않으면 꽃병에 꽂힌 꽃이요. 

재난[災難]을 겪고도 반성할 줄 모르면 구할길 없는 멍텅구리이다.

우리가 불러온 인재는 한마디로 무양심[無良心], 비도덕[非道德], 불성실[不實]의
결과요그동안 돈 벌고 출세하고 향락[享樂]에 침몰[沈沒]하느라

양심[良心]은 거추장스러웠고, 도덕[道德]은 우스꽝스러웠고, 성실[誠實]은 바보
서럽게만 생각 하였다.

그러니 어찌 질병과 수해 천재지변[天災地變]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사람을 위하여  양심과 도덕, 성실의 주체인 영아[靈我]를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을 개을리하자 세금을 체납[滯納]하면 압류[押留]하듯이 하늘이 생명을
 납치[拉致]한 것인가 보다.

교회발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는데 일부 교회에선 주일마다 예배를 올리며 
강행[]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서야 되겠는가?
양심을 지키면 개인 손해를 본다는 마음을 버리고 양심을 지키면 공동의 이익을
확신하는 의식개혁[意識 改]을 하라는 것이다.

의식[意識]을 바꾸지 않으면 사고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 이익을 위해서는 양심을 지킨다는 것만으로는 양심이 지켜지지 않는다.
사고로 생명[]을 잃은 사람이 죄가 많은 것도 아니고, 살아난 사람이 죄가 적은 것도
아니며 사고를 겪지 않은 사람이 축복[]을 받은 것도 아니다.
몇십 년 덜 살고 더 살고는 영원한 시간에는 오십보백보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너무 억울하게 사망한 희생자[犧牲者]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  참회[慙悔]하여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미숙한 양심을 가진 우리가 만든 이 사회가 그 많은 생명을 횡사[]하게 하였다.

 2020년 8월 일  
석암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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