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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애이경[愛而敬]

by 석암 조헌섭. 2018. 2. 10.
″애이경[愛而敬]”

사람을 사랑하는데 참나로 맞이함이 경[敬]이다.

부부[夫婦]란 한쪽의 장점[長點]으로 단점[短點]을 감싸줘야 한다.

맹자 진심장구 상편[孟子 盡心章句 上篇]에 이르기를~
식이불애 시교지야 [食而不愛 豕交之也]이고
음식을 먹이되 사랑하지 않으면돼지처럼 여김이요.
사랑하되 공손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름이다.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사찰[寺刹]이나 교회[敎會]에 시주나 하고 
헌금이나 하면 되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이는 껍데기 교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뜻대로 살려고 힘쓰는 신앙이라야 한다.
공자께서는 번지[樊 遲]가 인[仁]을 물었을 때 대답하기를 
애인[愛人]이라고 하였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아[自我]를 죽여 인[仁]을 이룬다.

살신성인[殺身成仁] 하여 인을 이루는 안중근[安重根],
정몽주[鄭夢周] 사육신[死六臣]등도 있었다.
예수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공자는 위나라의 대부 공손경[孔孫敬]을 말하면서 군자의 도는
공[恭], 경[敬], 혜[惠], 의[義] 네 가지가 있다.
[恭]이란 내가 움직임이요.
경[敬]이란 윗사람을 섬김이요.
혜[惠]란 백성을 기름이요.
의[義]란 백성을 부림이다.

친구 사이엔 농담[弄談] 말아야…
사람이 미친체하면서 떡 장사 보고 떡을 달라고 하였다.
농을 하는 사람은 미친체하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한다.


업신여기기도 하고 욕설도 하고는 이것은 다 제 마음이 아니고
농이었다고
 한 다. 그리하여 친구가 근심 덩어리라 이것이

친구의 할 짓인가?

이 세상에서 다른 것은 다 없어도 자기를 알아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마음 놓고 사귈 벗이 없다.
친구라면 농담을 하여도 괜찮다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벗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벗끼리 경이불위[敬而不]하는 것이다.

예기곡례편에 이르기를 압이경지 외이애지[押而敬之 畏而愛之]라
가까워도 공경하고 어려워도 사랑한다.
부부사이에도 서로 몸을 맡겼다고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벗을 사귀는 것이 인[仁]을 돕고자 함이라면,
짝을 맞는 것은 허물을 줄이고자 함이다. 
부부의 사랑은 서로 애지중지[愛之重之]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부부는 마치 가정이 권투하는 링처럼 생각하고 서로
상대방의 허점과 약점[弱點]을 찾아 공격[攻擊]하기도 한다. 
이것이 무슨 부부라 할 수 있겠는가?

부부[夫婦]란 나의 장점[長點]으로 너의 단점[短點]을 보완해 주는
절장보점[絶長補點]을 하자는 것이다.
부부에 사랑은 애경[愛敬]에 있는 것이지 쟁음[爭淫]에 있는 것이
 아니다.

논어[論語] 이인편[異人篇]에
공자[孔子] 曰 유인자 능호인 능악인[유惟仁者 能好人 能惡人]이라 
덕모[德矛]로 얼나로 거듭난 인자[仁者]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도있고
 미워할 수 도 있다.

석암 曰  지나치게 친절하는 것도 잘못이고 지나치게 무친[無親]하는
  것도 잘못이다.

친압[親押]이나 모멸[侮蔑]은 덕[德]이 모자르는 데서 일어난다.
친압[親押]처럼 간사한 것도 없고 모멸[侮蔑]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사람이 인격[人格]이 중심이 되어야지 재간이나 인물[외모]가
중심이 되면 친압[親押]과 모멸[侮蔑]은 막을 길이 없다.

사람은 장차 무엇이 될지 모른다.
모두가 예수나 부처가 될 수 있는데, 어떻게 멸시할 수 있겠는가?
성인을 존경하는 것은 쉬운데 소인을 모멸하면 그들이 일을 안해 준다. 
소인들도 사랑을 받는다고 개을러지면 또 안된다.
사람과 사람은 애이경[愛而敬]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2018년 8월 일  
석암 조 헌 섭


김용임= 거울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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