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463)

알악양선(遏惡揚善)

by 석암 조헌섭. 2021. 9. 22.

.

프로필 이미지

알악양선(遏惡揚善)


알악양선(遏惡揚善)이란 주역 화천대유(火天大有)괘의 대상전에 있는 글로서
악(惡)한 일을 뿌리 뽑고 선(善)한 일을 날린다는 뜻이다. 
알악양선(遏惡揚善)하야 順天休命(순천휴명)이니라.
군자가 이로써 악한 것을 막고 선한 것을 날려서 하늘의 명(命)을 따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에 추진(推進)했던
대장동 개발 사업이 특혜(特惠) 의혹(疑惑)에 휩싸였다.
화천대유(火天大有)괘는 밝은 태양이 하늘 위에 떠서 만물을 비춰주는 상(象)이다. 
화천(火天)은 하늘(天)의 불(火), 태양(太陽)을 의미하고
대유(大有)는크게 만족(滿足)하고, 크게 얻는다는 뜻이다.

주역 64괘 중 화천대유(火天大有)란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는다. 
천화동인(天火同人)
마음먹은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정당당하게 천하를 소유한다면 얼마나 좋은 의미인가!

주역(周易)을 공부하다 보면 주옥(珠玉)과 같은 글귀를 자주 만난다. 
주역의 글귀를 따와 이름도 짓고, 학교와 가정의 교훈(敎訓)으로 삼기도 한다. 
주역이 만학(晩學)의 제왕으로서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이치를 설명한 글이고, 
나아가 사람의 일을 풀이한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이르되 도(道)라고 하니
계지자선야(繼之者善也), 잇는 자는 선(善)이고,
성지자성야(成之者性也) 이루는 자는 성(性)이다는 글이 있다. 

즉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으로 보면 선(善)이라는 것은 형이하학적 말이고, 
양으로서 선하게 이어진다는 말이다. 
반면에 성(性)이라는 것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으로 성격이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사람의 본성은 선(善)한 것이고, 그 선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성(性)으로 나아간다고
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사사로운 욕심(欲心)이다.
무한정한 욕심은 일을 그르치는 근본(根本)이다.
사사로운 욕심을 물리치고 확실하게 지켜야 할 덕목인
선(善)은 누가 빼앗으려 해도 뺏기지 않도록 다짐해야 한다.

유교 사상(儒敎思想)에서 선(善)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 된 보편적이고 선천적인 것으로 간주하었다.
반면에 악(惡)은 태어나면서 외부세계와 접촉하는 가운데 형성된다고 보았다.

화천대유 회사 관계자와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회사명에 대한 내용에는
회사의 조상이 정조 때 장용영(壯勇營)에서 근무했는데, 정조가 제일 좋아하는 괘가
화천대유(火天大有)와 천화동인(天火同人)이어서 그렇게 지은 걸로 안다'라고 답했다.

큰 사건(事件)이 터질 때마다 뒤에는 부정(不正)이 드러난다. 
옛날에는 세상이 떠들썩한 범죄 뒤에는 반드시 여인이 끼어 있다는 말이 나왔다. 
요즘은 여인이 아니라 공무원(公務員)과 정치인이 끼어 있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사람이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에 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선(善)이 주도권(主導權)을 잡느냐 악(惡)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악행(惡行)을 저지르기도 하고 선행9善行)을 이루기도 한다.

맹자 진심상편에 云 유인대자 정기이물정자야(有大人者 正己而物正者也)라
대인(大人)은 저를 바르게 하여 남을 바르게 한다.
나라의 지도자(指導者)들은 맹자의 말대로 자기 자신이 바른가 살펴야 한다.
민(民)보다 정계(政界)와 관료(官僚)가 죄악(罪惡)을 더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미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시조(始祖)가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부터
선과 악의 싸움은 치열(熾烈)하게 벌어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선과 악의 투쟁사이다.


내가 보기엔 사람의 마음은 곧잘 악(惡)을 꾀한다.

잠깐 정신을 못 차리면 이 몸뚱이에 죄악(罪惡)이 차지하게 된다. 
자아의 삼독(三毒)이 아무리 끈질기고 셀지라도 얼인 나가 임재하면 꼼짝 못 한다. 
이것이 알악양선(遏惡揚善)이다. 악을 막고 선을 더 높이는 것이다.

정직한 길은 예로부터 모든 성현(聖賢)들이 바르고 곧게 걸어간 길이다. 
진리(眞理)에 순종(順從)하고 따르면 모든 것이 살아난다.
공자도 40에 불혹(不惑)이요. 50에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한다.

언제 마음을 뉘우쳐 군자(君子)가 될지 모른다. 
지금 잘못을 저질렀다고 죄악의 노예(奴隸)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죄인(罪人)이 내일의 성현(聖賢)이 될 수 있다.
 
2021년 9월 일 
석암 조 헌 섭

'나의 이야기(46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뼈대있는 집안  (0) 2021.10.19
이청득심  (0) 2021.09.30
목민심서[牧民心書]  (0) 2021.09.12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  (0) 2021.09.06
도문대작[屠門大嚼]  (0) 2021.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