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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121)/산행일지(118)

소백산 자락길(영주)

by 석암 조헌섭. 2017.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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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자락길(영주)

대덕 산악회 제255차 산행

2017 7월 2일 참석인원=42명

2014년 5월 4일 참석인원=38명

2006년 6월 3일 참석인원=33명

1999년 3월 7일 참석인원=21명

1996년 6월 9일 참석인원=12명

본 산악회는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으므로 안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1코스:삼가 탐방지원센타-비로사-성재-달밭골-초암사-죽계구곡

 1.2.3.4.5.6.7.8.9 배점주차창-8,2km-3시간30분 소요













이제야 밤꽃이 피네


잣나무숲 쉼터

달밭재에서 초암사까지는 2.4km,


 

 

 

 

 

 

 

 


 

 

 

 

 

 

 

 

 

1. 죽계구곡(竹溪九曲)

백두산(白頭山) 남쪽의 줄기가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다 강원도에 이르러

 응결되어 금강산(金剛山)을 이루고, 다시 남쪽으로 삼척에 이르러 하늘 높이

 솟아올라 태백산(太白山)을 이룬다.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뻗어가다 남쪽으로

 기운을 감싸안고 솟으니 바로 소백산(小白山)이다. 그 아래 한 가닥 산맥이

 돌아서 그윽하고 깊숙한 골짜기를 이루어 맑은 물이 앞을 휘감아 흐르니

 이것이 죽계(竹溪)이다.


 고려 후기의 명현이고 문인(文人)인 근재 안축(,1287~1348)은 일찍이 죽계의

아름다움을 죽계별곡(竹溪別曲)으로 읊었다.죽계구곡이 형성된 후 많은

 문인들이 죽계구곡을 찾아서 완상하며 경관을 예찬하였다.


이야순은 자신의문집에서

또 소백산에 들었는데, 죽계구곡竹溪九曲에 굽이를 따라서 돌에 새긴 것은

퇴계 선생이 손수 적은 것이 아니고 후인이 잘못 전한 것이니 글을 지어

 바로잡았다.

 비류암飛流巖은 선생의 시문이 일찍 미친 곳이나 드러나지 않고 전하지 않는

것이니 당시의 「유록(遊錄)」을 질정하여 그 장소를 알아냈다.


 선조의 자취가 이른 곳은 비록한 물 한 돌의 미미함이라도 반드시 깊이 살피고

 널리 드러내는 것이 모두 이러한 종류이다..

 죽계구곡은 순흥부 동쪽 2리에 있다. 1곡은 백운동 취한대, 2곡은 금성반석,

3곡은 백자담, 4곡은 이화동, 5곡은 목욕담, 6곡은 청련동애, 7곡은 용추비폭,

8곡은 금당반석, 9국은 중봉합류이다. 주세붕의 죽계지에 상세히 실려있다.


처음 반석(盤石)에 제1곡을 새기고 시내를 따라서 내려가며 끝 이점(梨店)에

 제9곡을 새기니 그 사이가 겨우 5리 정도이다. 시내가 길고 굽이가 많아 가장

 기이한 경치를 취한 것이 마땅히 그치지 않았으니 아홉 굽이를 새긴 것이

 아마도 너무 짧다.


 무이구곡은 처음 동구(洞口)에서 거슬러 올라가 원두(源頭)에 이르니 동구가

 제1곡이 되고 원두가 제9곡이 된다. 이것은 이른 바 죽계구곡과 상반된다.

 지금의 소견으로 마땅히 백운동(白雲洞) 취한대(翠寒臺)에서 처음 1곡을 삼고,

 금성반석(金城盤石)을 2곡으로 삼고, 백자담(栢子潭)을 3곡으로 삼고,

 이화동(梨花洞)을 4곡으로 삼고, 목욕담(沐浴潭)을 5곡으로 삼고,

청련동애(靑蓮東崖)를 6곡으로 삼고, 용추(龍湫)를 7곡으로 삼고,

 금당반석(金堂盤石)을 8곡으로 삼고, 중봉합류(中峯合流)를 9곡으로 삼아

 비로소 여기에 기록하여 후인을 기다린다.


 죽계구곡

 

낙동강 3대 발원지 중의 하나인 국망봉, 봉두암,

물길이 흐르는 주계천은 안축의 주계별곡의 주 배경이며

안향, 주세붕, 이황 등 많은 유현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리고 소백산과 죽계천의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소수서원까지 자리하고 있어서 구곡으로서는 충분한 조건이다.

 

제1곡 금당반석, 제2곡 청운대, 제3곡 척수대, 제4곡 용추, 제5곡 청련동애,

제6곡 목욕담, 제7곡 탁영담, 제8곡 관란대, 제9곡 이화동이 죽계구곡이다.

 선비님들으 발자취가 구곡마다 곳곳에 남겨져 있다.

구곡마다 아름다운 싯귀가 적혀 있다.

 

초암사

초암사 대적광전

초암사

신라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기 전 초막을 짓고 임시로 기거했던 곳.

명당자리를 골라 부석사를 세운 뒤 초막을 지었던 곳에 절을 지어 초암사라 한다.

 삼층석탑 (경북유형문화재 126), 초암사동부도(경북유형문화재 128)

초암사서부도 (경북유형문화재 129)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6.25전쟁으로 전소된 후

 규모가 작아졌지만 당대에 사용된 축대와 주춧돌을 볼 수 있는 천년고찰이다.


배점주차창 중식


배순은 조선중기 이 마을에서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소수서원이 있었지만

배순은 천민 출신이라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10여리 길을 매일같이 걸어와 강학당 문밖으로 흘러나오는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는 것이 공부의 전부였다고 한다.

 

퇴계선생이 이를 가상히 여겨 안으로 불러들여 유생들과 같이 글을 읽게 하였고,

그로인해 배순은 성리학의 거성 퇴계선생의 유일한 천민제자가 된다.


배순의 충심을 기리고자 광해군 7년(1615)에 정려되어 인조 27년(1649) 손자인

배종이 비석을 세웠고, 영조 31년 그의 7대 외손인 임만유가 충신백성이란

 말을 넣어고쳐 세웠다 (배순정려비:유형문화재 제279호) 

 

마을사람들은 지금도  배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배충신'으로 높여

부르고 있다.

마을 뒤를 막아선 초암사 뒷산은 배충신이 매월 삭망(초하루와 보름)으로

한양을 바라보면서 선조님에게 3년동안이나 제사를 모시던 장소라 하여

나라 '국'자 바랄 '망'자를 써 국망봉(國望峰)이 되었고,

배충신의 대장간 점포가 있었던 마을은 배점(裵店)이 되었다고 한다.

 죽계구곡

주현미 - 소백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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