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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목민심서[牧民心書]

by 석암 조헌섭. 2021. 9. 12.

 

 


 
                 정약용 영정사진                          정약용 동상
























목민심서[牧民心書]


목민심서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고서 이름이다.
그 저자가 다산 정약용[茶山丁若鏞] 선생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목민관[牧民官]으로서 행하여야 할 지침서[指針書]인 것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조선조 23대왕 순조[純祖] 때 천주교
박해[迫害]로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는 동안
저술[著述]한 책으로 지방관들의
폐해[弊害]를 제거하고 지방행정[地方行政]을 쇄신[刷新]하고자 했다.

내용은 목민관의 부임에서 물러날 때까지의 지방행정 전반에 관해 세세히
기술
[技術]
지방행정 술의 금과옥조[金科玉條]이다.

목민심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정조[正祖]가 승하하자 순조 때 남인, 북인, 노론,
소론이라는
사색당파[四色黨派] 싸움의 희생양[犧牲羊]이 되어 전라남도 강진으로
귀양살이를 떠나며 유배 생활[流配 生活]
무려 18년간 지속되었다.

그는 긴 유배 생활 동안 한 번도 남을 원망하는 일이 없이 나라를 구하는 길은 백성을
깨우치는 일이라며 저술 활동에 몰입[沒入]하였다.

국가와 나' 나라가 있기에 나도 존재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목민심서'를 비롯해
'수원화성'에 ‘거중기’ 등 155권이라는 역작[力作]들을 저술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목민심서의 내용을 국가통치[國家統治] 이념[理念]으로 받들어 나라를
경영[經營]한 이는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이다.
호찌민은 다산[茶山]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탐독하고, 전란 중 피신할 때도 항상
몸에 지녔으며 죽고 난 후 하노이에 있는 호찌민 박물관에 전시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尊敬]하는 인물로 다산을 꼽았고 다산의 기일엔 반드시
제사상[祭祀床]을 올렸으며 다산 정약용을 평생의 사표[師表]로 삼았으며,
목민심서의 내용{內用]으로 자신의 3꿍을 만들었다.

3꿍이란
함께 산다(꿍아), 함께 먹는다(꿍안), 함께 일한다(꿍땀)를 실천[實踐]하였다.


호찌민은 목민심서의 청빈[淸貧]한 삶과 민본주의를 본받아 국민과 더불어 살고
함께 먹으며 같이 일한다는 3꿍의 애민정신[愛民精神]을 실현[實現]하여
국민들의 추앙[推仰]을 받아 국부로 자리 하였다.

시집가는 딸의 행복을 비는 아버지의 애틋함이 얽혀있는
매조도(梅鳥圖보물1683호)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4언 詩 를 올려본다.

편편비조(翩翩飛鳥) 파르르 새가 날아 / 식아정매(息我庭梅) 뜰 앞 매화에 앉네

유열기방(有列其芳) 매화 향기 진하여 / 혜연기래(惠然其來) 홀연히 찾아 왔네

원지원서(爰止爰棲) 여기에 둥지 틀어 / 악이가실(樂爾家室) 너의 집을 삼으렴

화지기영(華之旣榮) 만발한 꽃인지라 / 유분기실(有賁其實) 먹을 것도 많단다.


독서[讀書]의 계절 갈바람 살랑한 창가에 앉아 목민심서를 한 번쯤---

2021년 9월 일
석암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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