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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괘씸죄

by 석암 조헌섭. 2016. 3. 17.
씸죄

요즘 여야 국회의원[國會議
員] 공천에 자기 소신[所信]을 굽히지 않고

바른 소리 하는 사람에게 재갈을 물리는 이른바 괘씸죄에 낙천[落薦]되는
의원이 말썽이다
괘씸죄란 권력자
윗사람에 순종하지 않거나 
밉보인 
속되게 이르는 이다.
 
괘씸죄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이 강직[剛直]하고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차분히 듣기보다
 자기주장[自己主張]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괘씸죄의 해결법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대화[對話]를
 나누는 자세를 취하면 적어도 괘씸죄의
적용[適用]은 피하게 된다.
 
진실[眞實]한 마음으로 상대[相對]를 존중[尊重]하고, 그 사람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생각하면 모든 문제[問題]가 순리대로 풀려서
 괘씸죄가 끼어들 틈이 없다. 괘씸죄를 언급[言及]할
수록 실패자[失敗者]가 될 뿐이다.
 
괘씸죄를 적용하는 사람 또한, 비위에 맞추려 온갖 아부[阿附]하는 사람보다 
도오선자 시오적 도오악자 시오사 (道吾善者 是吾賊, 道吾惡者 是吾師)라
나를 착하다고 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요 나를 악하다고 하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라 하였으니 통큰 마음으로 충언[忠言]을 받아 들이는 아량[雅量]이
있어야 뒤끝이 편안하다. 

 
양약고어구 이리어질(良藥苦於口而利於疾)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언역의이 이리어행(忠言逆於耳 而利於行) 충고하는 말은 귀에 그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다 하니, 쓴소리를 양약[良藥]으로 삼으면 한 계단 성숙[成熟]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법 조문에도 없으면서 가장 강력[强力]한 형벌을 받는 것이 괘씸죄다.
특히 혼례[婚禮]나 상[喪]을 당할 때 인사가 빠지거나 명절[名節]등등 
한국 사회만이 안고 있는 예절[禮節]의 병폐다. 이 죄에 걸리면 감형[減刑]도
사면도 없다.
 무자비한 무관심[無關心]이라는 불이익[不利益]이 주어진다.
 
심지어 아들딸도 이 죄[罪]에 걸리면 부모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다. 
오랜만에 오면서 맨손으로 달랑올 때는 자식농사 헛농사로 보인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위나라의 왕에 총애[寵愛]를 받는‘미자하’라는 
잘 생긴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病]이 나셨다는
전갈을 받고 미자하는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타는 사람은 
월형[刖刑발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을 칭찬하고 용서했다.
“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刖刑]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따서 한입에
먹어 보이더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먹던 복숭아를 왕께 바쳤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달고 맛있는 복숭아를 과인에게도
맛을 보러고 주니 참 고맙구나”
흐르는 세월[歲月]과 더불어 미자하는
점점 교만[驕慢]해지고
안하무인[眼下無人]격으로 행동[行動]하였으니
모든 사람이 미자하를 미워하였다.

왕의 총애도 점점 엷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는 잘못을 저질러
처벌[處罰]을 
받았고왕은 지난 일을 상기[想起]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여도[餘桃]”라 하여 그것을 임금에게 먹도록하여
죄를 지었으니 이것을 여도지죄[餘桃之罪]라 한다. 
미자와는 처음에는 겸손하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교만[驕慢]해졌다.

교만하면 은혜에서 멀어진다.
 등고자비[登高自卑]라는 말이 있다.  
높이 오를수록 자신[自身]을 
낮추라는 말이 있다. 
목민관[牧民官]은 백성으로부터
여도지죄[餘桃之罪]를 당하지 않도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지나온 역사[歷史]를 보라! 

청렴강직[剛直]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정몽주[鄭夢周],
조광조[趙光祖],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김일손[金馹孫],
정여창[鄭汝昌],
오건(吳健), 정인홍[鄭仁弘],사육신[死六臣],
윤선도[尹善道], 송시열[宋時烈], 조식曺植), 등은 수백 년이 지났건만
만백성의
추앙을 받아 유적지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2016년 3월 17일 석암 조 헌 섭
여기가 아파 - 백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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