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463)

보리동지(納粟同知)

by 석암 조헌섭. 2019. 4. 1.
리동지(納粟同知)


장관들의 인사청문[]를 보면서 도리에 어긋나는 행태가 어느 
정권 
때나 다르랴! 장관 후보자나 질문하는 국회의원[國會議員]이나 모두가
똑같은 
그나물에 그밥 아닐는지? 추궁하는 국회의원이 장관 후보자가
되면 
깨끗할랑가! 

 잘못된 정책에 책임지는 책임정치[責任政治]를 해야지 내로남불식 정치
분야는 
붕당정치[朋黨政治]에 해당할 정도로 패거리 형태를 보인다.
자기편이 아니면 정책이고 이론이고 무시하고 당동벌이[黨同伐異]형태를
벌이고
 있는데, 반대의견을 개진하면 좌파, 우파 몰아붙이는
이념적
[理念的] 파당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나라 사회 저명인사, 소위 상류계층[上流階層]
의 인생살이가 돈과 명예도 있고
 살만하고 사회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위장 전입, 병역기피, 승진,
탈세, 
부동산 투기, 자녀 또는 친인척 취업, 대가성 뇌물수수, 등 온갖 
비리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여 그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오래된 병폐[病弊] 남아있는 듯하다. 

하기야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니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
인맥
[人脈]도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요즘은 있는 사람이 더한 세상인 듯하다. 
 하기사 있어야 갖다 바치지, 없는 사람이 뭘 갖다 바치랴…

고위 공직자는 청렴결백[淸廉潔白]하고 사회 모범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지만, 
청렴결백한 자는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으니 청소년들이 뭘 보고 배울까?

경주 최부자[[富者] 12 400년에 걸쳐 이룬 부와 명예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개인의 부를 사회로 확장시킨 
최부자 정신[精神]을 통해 나눔, 더불어 사는 삶, 

부의 철학, 세상에서 가장 큰 가치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최부자 정신을 위정자[爲政者]들도 본받았으면…

또한, 조선 정조대왕[正祖大王] 당시 흉년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제주도 사람들을
위해
전 재산으로 쌀을 사서 분배한 거상[巨商] 김만덕[金萬德, 1739년 ~ 1812년]
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역사적 사례를 본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 선조들은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이 말은 숱하게 
들어왔다. 


조선조 말기에는 합법적으로 이런 부패 연결이 성행했다고 한다.
정치, 사회기강[社會紀綱]이 문란해져 곡식이나 돈을 바치고 벼슬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봉건 체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매관매직[賣官賣職] 성행하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 따라서 서민
 계급 중에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벼슬자리를 사는 것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던 것이다.


이들을 일러 흔히 보리를 주고 벼슬을 샀다 하여 보리동지라고 조롱하곤
하였으며 
납속동지(納粟同知)`라고도 하였다. 
이 말은 보리동지의 한자 숙어란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이 생겼는데, 그와 비슷한 말이다. 


보리동지는 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얻은 사람이고, 돈으로 공명장[空名帳]
사서 
얻은 벼슬을 ‘바꿈 벼슬’이라 하며, 
이런 사람들이 큰소리치며 거들먹 거리는데,이를 ‘거통’이라 하였다.

이는 임진왜란[壬辰倭亂]후 가장 극심하였는데,오랜 난으로 인하여 나라
재정이 
궁핍하자 돈이나 곡식을 바치면 군역 의무를 면해주는 납속면역,
관직까지 주는 
납속수직 등이 있었는데, 이를 공명철이라 하여 실제
벼슬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백지 위임장을 주었는데,
그 백지 위에다 자기 마음대로 벼슬이름을 새긴 
명예직[名譽職]이었다. 

후일 이것이 족보에 올라 가문을 빛낸 선조라 하여 후손들은 자랑스러운 
선조를 
모셨다고 숭상[崇尙]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얼[庶孼]과 향리층鄕里層]은 양반사회에서 도태되어 밀려난 계층이지만,
이 시기에 이르면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납속책을 통해 신분 상승이 열렸다.

천인의 경우에도 재력만 있으면 일단 속량[贖良]을 했다가 다시 양반으로 
오를 수 있었다.
특히 정부가 재정적으로 곤란에 빠질 때마다 강제로 발매한 공명첩은
재력으로
 양반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러나 국가 체제의 유지를 목적으로 시행된 이 제도는 시대가 갈수록  
문란해져 나라의 안위조차 위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있어야 사람 행세를 하는 세상이니… 

이 모두가 덕과 명예를 중요시 않고 물질만능주의萬能主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는지? 돈이나 지식도 이 몸을 위해서는 모아두지 말아야 하며
 물질[物質] 임자가 되어야지 물질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우리는 적든 많든 재물을 가지고 있다면 잠시 맡아관리하는 청지기[머슴]일 뿐,
돈이 많으면 가족이 흩어지고 없는 집이 화목하고
 효자가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배하는 귀족은 주지육림(酒地肉林)으로 뱃가죽이 두꺼워지고 백성은 
초근목피
[草根木皮]로 생활하는 빈부격차가 OECD 국가 중 1위라는 부끄러운 현상…
모든 사람이 사랑과 행복이 함께하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마하트마 간디는 청지기의 삶을 다할 것을 강조하며 사람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욕망[慾望]을 줄여야 한다고…

2019년 4월  석암 曺 憲 燮 1111111

 

'나의 이야기(463)'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흥청망청  (0) 2019.05.11
쌍책초등학교 총동창회  (0) 2019.04.28
눈물의 섬(관탈섬)  (0) 2019.03.19
재스민 혁명  (0) 2019.03.05
오관계(五觀戒)  (0) 2019.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