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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윤리 불교(佛敎)가 운명(運命)을 이기고 관습을 이기고 폐쇄적 도덕을 이겨나갈 수 있는 종교(宗敎)라는 것은 여러 고승들의 탈(脫) 가족주의적 성향을 보면 잘 나타난다. 사실 세속의 윤리를 보면 석가(釋迦)는 아버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처자식까지 버린 철면피였다. 그런데도 그는 과감히 왕궁을 떠났고 스스로 자유 자제한 행동(行動)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처자식과의 이혼(離婚)은 상투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홀가분한 해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집 님의 침묵(沈默)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이 본부인을 버리고 출가한 다음 한참 뒤 다시 다른 여자에게 새장가 든 것은 그 과정이 아직도 수수께끼로 되어 있다. 그는 출가 후 불교 유신론을 통해 승려도 결혼(結婚)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력히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그는 왜 본부인과 자식을 다시 거두어들이지 않은 것일까?. 일설에 의하면 만해는 본부인이 출산하려고 할 때 미역을 사 오겠다는 핑계로 집을 도망쳐 나와 그 길로 입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로 그는 승려도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본부인과 자식한테는 지극히 냉정하게 대했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엔 그는 불법(佛法)을 배우러 집을 나선 것이 아니라 본부인에게 정이 없어 집을 뛰쳐나간 것으로 여겨진다. 가족(家族)을 버리는 것이 일반적 세속 윤리에서는 비윤리적으로 간주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 이로다라고 유명한 성철 스님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에 반하여 그것이 석가의 경우든 만해의 경우든 불교(佛敎)에서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용납된다. 이런 사실(事實) 자체가 불교가 갖고 있는 반운명론적 속성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라 하겠다. 색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 불교라고 되어 있으면서도 원효 스님의 경우는 오히려 색을 실습했기 때문에 얼렁뚱땅 더 존경(尊敬) 받는 것이 불교(佛敎)다. 경허선사의 예도 마찬가지인데 이처럼 불교는 융통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종교인 것이다. 석가는 생, 노, 병, 사(生,老,病,死,)의 4 고(苦)에 벗어나 보려고 수도 했지만 죽을 때 제자들에게 “인간은 어차피 한번 죽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운명에 패배한 것일까?. 꼭 그런 것 갖지는 않다. 그는 전제 군주가 되어 백성을 괴롭힐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그것을 거부(拒否)하고 자유인이 되었고 수많은 (民衆)들에게 존경(尊敬)받는 쾌감을 평생동안 향유 하였다. 또 당시의 짧은 수명으로 본다면 80세의 장수(長壽)를 누리는 행운(行運)도 가졌다. 그러므로 불교는 끊임없는 도전과 변신의 종교다. 예수가 민중 들에게 원죄 의식을 없애주려 애썼다면 석가는 업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려 애썼다. 또한, 석가는 가족관계로부터 과감히 탈출한 사람이다. 우리는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진실한 벗과 교제하고 책과 인터넷을 통해 인생의 지혜(智慧)를 깨쳐 보려고 애쓰는 자세를 취해야 하고 지나친 출세나 명예를 바라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내실을 다져 나가는 겸양의 정신(精神)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의 삶을 행복(幸福)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현 세태를 그대로 쓴 스님의 슬픈 노래이기에 현실의 아픔을 돌아보며 옮겨 본다. 아범아! 내 아들아 / 능인스님 1 1, 아범아! 내 아들아! 날 제발 데려가다오 밥 굶어도 나는 좋고 헐벗어도 나는 좋단다, 너의 얼굴 바라보면 밥 먹은 듯 배가 부르고 너와 함께 사는 것은 옷 입은 듯 나를 감싸니 애비야! 내 아들아! 제발 날 좀 데려 가다오, 2, 어멈아! 내 며늘아! 날 제발 데려가다오, 우리 손주 재롱 보며 행복하게 살고 싶구나,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그리운 건 너희 얼굴들 가고파도 갈 수 없는 기구한 나의 운명을 에미야! 새 아가야! 제발 날 좀 데려가다오, 3, 아가야! 내 손주야! 날 제발 데려가다오, 너의 애비 키우던 정 아직도 변함없는데 이 할미를 원망할까 니 애비를 미워할까, 애지중지 키운 자식 세월 따라 멀어만 가니 아가야! 내 손주야! 제발 날 좀 데려가다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스님의 사연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는 며느리... 거기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손자 그러나 그러한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아서 양로원을 찾아가야만 했던 어머니 그것도 오후에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동승하여 차를 태워서 이름 모를 길에 내려 주면서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해 놓고 다음 날 새벽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 양로원에 갔다가 어느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씀 한마디면 공무원과 교육자라는 신분만 가지고도 아들도 며느리도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할머니는 자식이 그리워 눈물로 지내시면서도 우리 아들이 잘돼야 한다고 하시니 도대체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19년 전 예천 연꽃 마을에 방생 법회를 갔을 때 만난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하루하루 아들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노래한 이 노래는 고학력 자식 일 수록 부모님을 외면하는 이 시대의 가장 뼈아픈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리라 생각하지만 아마도 젊은 사람들은 싫어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나는 이 노래를 만들어서 공연장에 가면 자신 있게 부른다. 이 시대에 효의 정신이 아롱거리는 아지랑이처럼 다시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그날까지... 석암 조헌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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